동물병원 인체용 의약품 사용 관련 법제도 정비 필요
동물병원을 다니는 반려인이라면 알아차리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동물에게 처방되는 약의 대부분은 인체용 약이라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을 키우다 보면 신체적으로 사람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어느정도 수긍이 되는 점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반려인들은 애로사항을 토로하고 있다. 같은 약인데도 동물병원에서 구입하면 과도하게 비싸진다는 점이다.
사람용으로 사면 3천원인데…
실제로 A 반려인은 동물병원에서 매번 1만원 넘게 지불하며 구매하던 안약이 있는데, 우연히 결막염 증세로 안과를 갔다가 같은 안약을 처방 받았고, 3천원에 구입했다고 한다.
같은 약인데 의사가 처방해주면 3천원, 동물병원에서 직접 판매하는 것은 1만원이 넘는다며 동물병원이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동물병원은 인체용 약품 도매상 구입 불가능해
사실 이 문제에 얽혀있는 사항은 두 가지다. 먼저, 사람의 경우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약값의 일부만 부담한다. 즉, 3천원짜리 약을 샀다고 하더라도 의료보험 덕분에 나의 부담액이 낮아진 것이지 실제 약값이 3천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현행 약사법 상 동물병원은 인체용 일반 전문의약품을 도매상에서 구입할 수 없게 되어있다. 즉, 수의사는 제약업체-도매상-약국 이라는 판매채널을 거쳐서 물품을 공급받는다. 이 때, 도매상과 약국의 가격 차이는 적게는 20~30%, 많게는 3배까지 나는데, 이러한 마진이 결국 최종소비자인 반려인에게 전가된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만성적인 질환을 앓는 동물의 보호자들은 ‘사람약인 경우 제품명을 확인해서 구비해 놓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힌다. ‘가격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보니 동물병원 측도 약은 따로 구입하겠다고 하면 이해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소비자를 위한 최선일까
그렇다면, 소비자를 위한 최선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동물병원에서 동물을 위해 처방하는 모든 의약품에 대해 처방전 발급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이 있다. 이 경우, 소비자가 직접 약국에 가면 되기 때문에 현재의 제약업체-도매상-약국-동물병원-소비자 구조를 탈피하여 제약사-도매상-약국-소비자의 구조가 될 수 있다.
현재는 수의사법 제12조의2(처방전의 발급 등)에 따라 동물용 의약품에 대해서만 처방전 발급 의무를 지닌다.
제12조의2(처방전의 발급 등) ① 수의사는 동물에게 동물용 의약품을 투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동물의 소유자 또는 관리자(이하 “동물 소유자등”이라 한다)에게 처방전을 발급하여야 한다. 다만, 자신이 직접 처방ㆍ투약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다음으로는, 동물병원에서 동물을 위해 사용하는 인체용 약품에 대해 도매상과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 있다. 실제로,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14년 12월 31일 지난 19대 국회 (윤명희 의원)에서 발의된 바 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이후, 2017년 10월에는 규제정보포털을 통해 부산시 수의사회에서 건의한 바도 있다.
어떤 방향이든 선행조건은 인체용 의약품 중 동물용 의약품으로 쓰이는 제품군에 대한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처방 혹은 구입 시 동물을 위해 쓸 수 있는 인체용 의약품에 해당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난 4월 18일 부산시 수의사회 건의사항에 대한 답변을 통해 ‘농림축산식품부에 동물병원 사용 인체용약목록 및 사용량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보호자, 동물에게 쓰이는 의약품 정보 알 권리 있어
이 문제는 단순히 약국과 수의사 간의 이익 혹은 소비자(반려인)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사안이 아니다. 동물에게 쓰이는 의약품 정보를 아는 것, 즉, 의료소비자의 알 권리와도 직결된다. 여기서 의약품이 동물용인지 인체용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쓰인다면 모두 알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경우 약국에서 처방약을 구입할 시 약의 명칭(성분), 효능 및 투약법 등을 고지받는다. 하지만, 동물병원 처방 시에는 그렇지 않다. 문의하면 답변 받을 수 있겠지만 보통의 경우, 문의할 생각도 하지 못 한다. 그리고 ‘내복약 X일’ 정도만 기재되어 있는 봉투만 받고 돌아온다.
이처럼 정보를 제공받지 않는 구조에서는, 예후가 좋지 않을 때 문제가 된다. 동물에게 약물 부작용이 생기거나 인체용 의약품 오남용에 대한 우려사항이 발견 되었을 때 올바른 처방이 이뤄졌는지에 대해 판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행법 하에서는 동물병원의 인체용 의약품 사용에 대해서 비용 문제가 초래될 뿐만 아니라 의료소비자의 알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동물병원에서 인체용 의약품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현실에 대해 심도있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관련 조항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반려인의 피해가 지속되는 만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관련 조항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