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반려견 ‘구름이’ 사건으로 살펴보는 동물 의료사고 악순환
갑작스러웠던 ‘구름이’의 마지막
10월 13일 래퍼 도끼가 자신의 반려견 구름이(9세)의 의료사고 소식을 알렸다. 고관절 수술 후 입원 중에 담당 수의사가 주인인 도끼의 동의 없이 전신마취 및 재수술을 하였고,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반려인은 가족과 같은 반려동물이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동물병원에 간다. 그리고, 질병을 진단받으면 안타까움, 미안한 마음이 밀려오면서 치료 및 수술을 하게 된다.
아마 도끼와 구름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끼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구름이를 무사히 퇴원시킬 생각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구름이는 얼른 주인 품에 돌아가 뛰놀 생각만 했을 것이다.
구름이의 죽음은 구름이에게도 도끼에게도, 이 일을 남 일 같지 않게 느끼는 반려인들에게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구름이 사건 같은 황당한 동물 의료사고 많아
이번 구름이 사건처럼 동의 없이 동물이 병원에 있는 중 수술이 강행되는 등의 의료 행위는 조금 황당하다. 사람을 진료하는 병원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동물의 경우 다르다.
반려동물 커뮤니티에 올라온 각종 사고의 내용을 살펴보면 ‘스케일링을 하러 갔는데 담낭 제거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에 수술을 강행, 사망’, ‘수술 전 수액 처치 중 사망하였다고 통보받고, 진료기록을 요청하자 거부 당했다’ 등 믿기 어려운 사고가 많다. 대체 문제가 무엇일까?
동물은 말을 못 해
동물은 말을 못 하기 때문에 주인은 의료 행위 및 사고 대처 시 어려움에 부딪힌다. 간단한 치료일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수술을 권유받으면 고민이 시작된다. ‘정말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시킬 정도로 심각한 걸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은 ‘죽도록 아프다’, ‘다리가 아니라 배가 아파’, ‘퇴원하기엔 컨디션이 안 좋아’ 등 자신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반면에, 동물은 그렇지 않다. 주인은 육안으로 보이는 동물의 모습, 행동을 보고 추측할 뿐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주인의 선택’으로 진행하는 의료 행위라고 하더라도 혹시 오진 혹은 과잉진료의 가능성은 없는지 알 수 없다. 경미한 부작용에서 사망 등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겪고 나서야 ‘오진이었구나’, ‘과잉진료였구나’ 깨닫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은 의료소송 시에도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사람은 의료 행위 후 상태가 어땠는지, 잘못된 점은 없었는지 등 진술할 수 있다. 사망의 경우 사망 전 환자가 어떤 말을 했다고 남이 증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 의료사고는 해당사항이 없다. 주인은 아이의 상태가 어땠는지, 마취 후 상태가 어땠는지 등을 제대로 알지 못 한 채 대응해야 한다.
의료소비자로서의 권리,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위 같은 이유로, 의료사고 발생 시 주인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료기록부’다. 동물의 상태가 어땠는지 혹은 입원 및 수술 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병원은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가 없다. 현행 수의사법에 따라 ‘진단서, 검안서, 처방전’은 발급 의무가 있지만 ‘진료기록부’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사람의 경우 진료기록부 발급은 매우 기본적인 환자(의료소비자)의 권리로 여겨지지만 동물병원 의료소비자에게는 예외다.
이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안타깝게도 진료기록부 조회를 거부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내 가족 떠났는데, 물건값 보상?
주인이 반려동물의 치료를 받게 할 때는 ‘가족’의 병을 고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동물의 법적 지위는 재화(물건)이므로 반려동물은 주인의 소유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동물 의료사고 소송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금액은 제한적이다. 관련 판례를 살펴보면 구입가격이 기본적인 가치 산정의 원칙이며 통상적으로 구입 가격을 초과하는 치료비 혹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실에 많은 반려인들은 동물 의료소송은 승소해서 얻는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판단하고, 마음에 가족을 묻은 채 대응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주인의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 값’을 인정한 판례들도 있었다. 2007년 2월 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0부)은 불량사료를 먹은 동물이 집단으로 신부전증에 걸린 사건에 대해 “애완견 교체는 불가능하다”며 “장애를 입은 경우 50만원, 사망한 경우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 그 중 하나다.
동물 의료사고 대응 못 하니 법에서 보장한 처분도 이뤄지지 않아
수의사법에 따라 각종 과실행위가 증명되면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면허 정지, 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동물 의료사고 중 소송으로 이어져 과실이 밝혀지는 사례가 적다보니 행정처분 사례가 적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즉, 동물 의료사고에 대한 대응이 잘 이뤄지지 않다 보니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구름이 사례와 같은 수의사의 고지의무 위반을 비롯해 수많은 동물 의료사고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반려인들이 위같은 이유로 속만 앓다가 사고에 대응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의료 과실은 증명될 길이 없다.
관련법의 문제점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도 갖지 못 하며, 미약하지만 법에서 보장한 처분도 내려지지 못 하는 악순환이다. 또다른 구름이가 무고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