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까다로운 강아지 – 잘 먹고 잘 싸는 강아지로 키우기
반려견이 무엇을 먹었는지가 반려인을 말해준다
당신이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미식가가 했다는 이 말은 먹는 것이 사람의 건강뿐 아니라 사람됨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 말을 강아지에게 적용해 보면
네가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너의 반려인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아지를 키우다보니 무엇을 어떻게 먹이느냐가 늘 고민이 되더군요. 잘 먹고 잘 살사는 것은 사람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주는 것만 먹고 살아야 하는 반려견에게는 일생이 걸린 중대사니까요.
2개월 새끼 강아지 식사법은?
미리 고백하자면, 저는 저의 무지로 인해 강아지의 입맛을 완전히 망쳐버렸습니다. 저의 개아들 말티즈 ‘이돌’이는 지인인 수의사 쌤의 병원에서 데려왔는데요. 돌이를 처음 데리러 간 날, 아이를 안고 나온 쌤이 강아지를 건네지 않고 갑자기 질문을 하더군요.
“2달 된 새끼 강아지는 하루에 밥을 몇 번 줘야 하나요?”
“네? 하루에요? 네… 네.. 네 번이요?”
“그럼 하루에 사료량은 얼마나 줘야하는데요?”
“종이컵 하나… (언짢은 표정을 보며) 절반인가요?”
칭찬을 하진 않았지만 영 틀리지는 않았는지 강아지를 건네주었습니다.
“공부를 좀 하셨네요. 앞으로 사람이 먼저 밥을 먹고 나서 강아지에게 밥을 주는 것만은 꼭 지키세요!!!”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습니다.
아이를 데리러 가기 직전 벼락치기 인터넷 검색이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덕분에 강아지 개월 수에 따라 사료량과 횟수를 계산하는 게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버렸더랬습니다.
입맛 까다로운 강아지 습관 망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새롭고 좋은 사료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2달쯤 지나면서 시작됐어요.
퍼피용 사료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돌이가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그랬습니다. 맨날 같은 사료만 주는 게 지겨워서 인터넷을 검색하면 등장하는 새롭고 좋은 사료들을 사주고 싶고, 맛있어 보이는 온갖 간식들을 다 먹이고 싶어졌습니다.
갓 4개월 아가라 간식을 먹일 수는 없으니 강아지에게 좋다는 블루베리, 딸기, 단호박, 파프리카, 고구마 등을 조금씩 주기 시작했습니다. 돌이는 당연히 맛있게 받아먹었고 점점 사료량이 줄어갔습니다.
입맛 까다로운 강아지, 어떤 사료든 빨리 질려버렸다
사료를 바꿨지만 3일 이상 먹는 사료가 없더군요. 기호성 좋기로 유명하고 비싼 사료회사들의 샘플을 신청해서 먹여봤지만 샘플은 맛있게 먹다가도 본품을 주문하면 끝까지 먹는 것이 없었습니다.
말랑말랑 맛있어 보이는 반습식 사료를 구입했습니다. 첨에는 좋아했지만 여전히 3일 이상 먹는 건 없었어요.
다음으로 화식사료를 주문했는데… 역시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가격의 압박 때문에 오래 먹일 수 없었습니다.
홈메이드 자연식, 역시 힘들어
“그렇다면 내가 직접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 먹이자”는 생각에 레시피를 찾았습니다. 강아지가 좋아하는 각종 채소와 단호박, 고구마를 삶아서 으깨고 볶은 소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를 섞어 냉동실에 얼려두고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더군요.
하지만 한 달 쯤 지나니 냉동실만 열어도 돌이가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지쳤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개육아에 살림도 해야 하는데 “끼니마다 강아지 밥상 차리는 일을 몇 십 년 동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몇 년은커녕 몇 달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호성 좋은 사료를 검색하고, 종류대로 주문하고, 고기를 삶아서 얼리고… 새로 나온 사료가 있나 검색하고… 강아지와의 밥상머리 전쟁이 무한반복 됐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이 바로 강아지 입맛을 망치는 정확하고 확실한 수순이더군요.
쉽게 질리고, 더 맛있는 것을 원하고, 조금만 더 굶으면 더 맛있는 걸 준다는 걸 배우게 되는 거예요!!!
입맛 까다로운 강아지 대처법? 반려인의 결단 뿐!
모든 간식 끊고 사료만 남겼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오늘은 또 뭘 먹이나 걱정하다가 이 무한반복의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제가 이를 악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요.
당장 모든 간식을 끊고, 채소들을 치우고, 돌이가 가장 좋아했던 사료 하나만을 남겼습니다.
모든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대로 정해진 시간에 밥그릇을 내려놓고 10분을 기다렸다가 치웠습니다. 부스럭 소리에 다가왔던 돌이는 냄새를 맡아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더군요.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눈치였어요.
3일 거뜬히 버티는 강아지, 걱정만 늘어나는 반려인
다음 날은 아예 밥그릇 근처에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3일 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군요.
이때 깨달은 것이, 강아지는 3일 동안 밥을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반려인은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초조해지고 안달이 나서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아이가 쓰러진 건 아닌지, 집에 남은 식구들이 간식을 주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감시하느라 온 신경이 쓰였습니다.
입맛 까다로운 강아지가 변했어요
3일에 한 번 사료를 먹는 강아지
여기서부터 강아지와 진정한 줄다리기가 시작됩니다. 돌이는 물과 칭찬 간식 몇 개로 5일을 버텼습니다. 5일이 끝나가는 늦은 밤, 혹시나 해서 사료그릇을 내려놨더니 갑자기 덤벼 들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3일치는 넘는 사료를 폭풍흡입하고 만족스럽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사료를 먹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3일까지 버티다가 사료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꼭 2달을 3일에 한 번씩만 사료를 흡입하며 버티더군요.
매일 사료 먹는 강아지가 되기까지는 6개월
3달 후에는 하루건너 한 번씩 사료를 먹었고, 4달이 지나니 하루에 한 번은 사료를 먹는 그럭저럭 규칙적인 습관이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오전에는 파프리카, 당근, 브로콜리, 양배추 등 신선한 채소를 먹고 저녁에는 사료를 먹습니다. 이벤트가 있거나 칭찬을 많이 받아서 간식을 많이 먹은 날에는 확실히 사료 먹는 모습이 신통치 않습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6개월 넘게 걸린 것 같습니다.
산책하면서 만난 강아지 친구들을 보면 식탐 많은 아이도 있고 음식엔 영 관심 없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도 있고 뭐든 삼키고 보느라 아예 입맛이란 게 없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외모와 성격이 다양한 만큼 음식에 대한 취향도 천차만별 다양한 것입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건, 강아지에게는 뭘 먹을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는 겁니다.
아직도 매일 밥 때가 되면 “오늘은 순순히 잘 먹어줄까?” 살짝 고민하면서 이런 자책이자 고백을 합니다.
니가 입이 짧고 까다로운 게 어디 니 잘못이겠니? 다 내 탓이다. 내 잘못이다. 내가 잘 할게…!
ㅂ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