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 개는 우리보다 빨리 늙고, 아기는 우리보다 빨리 자란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가족이 둘이 생겼다. 든든한 남편과 작은 강아지. 결혼 전에도 강아지와 함께 살았지만, 결혼 후 강아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받곤 했다. “아기 생기면 강아지는 어떻게 해?” 어떤 때는 아기뿐 아니라 강아지도 걱정이 된다는 말이 이어져 당황스러웠다.
나는 분명 하고싶은 말이 있었는데 내가 겪어보지 못 한 상황이기에 조심스러워 웃음으로 얼버무리고는 했다. 나는 모르는 세계. 아기와 강아지가 함께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저 질문은 참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얼마나 당연하기에 나는 한 마디도 못 하고 얼버무린 것인지.
그래서였던 것 같다. 내가 김상아 작가의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을 열어보게 된 것은. ‘1녀 1견과 함께 살며 배운 것들’이라는 문구를 보고 아마도 나는 한 번 물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아기의 언어로 우리의 관계를 정의해본다
모두 잠이 든 늦은 밤, 책을 펼쳤다가 동이 트기 조금 전 책을 덮었다. 이 책은 한 엄마가 1녀 1견과 살면서 ‘진짜 엄마’가 되는 이야기다. 엄마는 아기와 개를 돌보며 그들을 관찰하고, 그 관계 속 감정에 대해 담담히 서술한다. 책에서는 특히 아기의 눈으로 보는 엄마와 개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는데 나는 아래가 참 기억에 남는다.
“엄마, 나는 우리 개 주인이야” “너, 주인이 뭔지 알아?” “응, 안아주는 사람이지”
“엄마, 엄마는 내 주인이야.” “왜?” “나를 매일 안아주잖아.”
“엄마, 얘도 마음이 있어. 어디에 있냐 하면, 여기 꼬리. 꼬리에 마음이 숨어 있어. 봐봐 꼬리를 흔들지? 지금 마음이 좋다고 말하는 거야. 조용히 아주 조그맣게.”
아기의 말을 곱씹으며 나를 꼬옥 안아주던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리고는 내가 매일 스치듯 보고 지나쳤던 우리집 개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아기의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렸을 때 매일 느꼈던 엄마의 온기도, 우리집 개의 마음에 대해 떠올려볼 일이 없었겠지.
나는 안아주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 엄마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밥을 먹지 않는 아기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다가 그 노력이 아기에게는 어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려놓지 못하며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아기는 그저 웃어주며 ‘엄마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존재인가 보다.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은 남이 아니라 아기가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른다.
“엄마라서, 아빠라서, 너보다 나이가 많아서, 아는 것이 많아서, 어디서 들었다고 아는 체할지도 모른다. 아이라서, 개여서 저지르는 실수를 포근히 덮어주지 못하고 잘못을 잘근잘근 짚어댈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이와 개는 나 보라는 듯 다음 날 아침이면 나를 향해 웃어주겠지, 꼬리를 쳐주겠지. 그리고 나는 또 뒤늦게 깨달을 것이다. 나는 이들을 실컷 안아주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실 이 책을 아기와 개를 함께 잘 키우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펼쳤다. 하지만 그 이상이었다. 아기와 개와 살면서 성장하는 한 어른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히 좋은 엄마로 성장했다기보다 엄마로서 겪는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진짜 어른이 된다. 세상에 모든 엄마는, 주인은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개는 우리보다 빨리 늙고, 아기는 우리보다 빨리 자란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노견과 생(生)이 이제 막 시작된 아기. 엄마는 시간이 어서 빨리 가주기를 바라면서도 멈추기를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개의 죽음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고 담담하게 말하며, 지금 이 순간 잘 해야한다고 말한다.
실컷 안아주자. 실컷 사랑해주자.
개는 우리보다 빨리 늙고 아기는 우리보다 빨리 자란다.
우리가 무언가를 실컷 해줄 수 있는 시간은 이 다음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나는 참 부러웠다. 나는 개의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런 채로 갑작스레 첫째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나니, 미안한 것 투성이었다. 사실 나의 강아지는 그저 늙은 개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귀여운 우리집 막내였다. 내가 자란 시간동안 매일매일을 늙던 개를 보면서 나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에서 엄마가 개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순간들을 접하면서 나는 참 부러웠다. 저 개는 어린 막내로써 받는 사랑뿐만 아니라, 늙은 개로써 받아야 하는 배려를 받으며 살고 있겠구나.
사실, 죽음에 준비가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주인이 개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할수록 늙은 개는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배려를 받으며 담담하게 ‘주인아 정말 고마워’라고 말하겠지.
마치며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지만 반려동물이 하루아침에 유기동물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귀여운 강아지는 흔하지만 늙은 개는 흔하지 않은 이 사회에서, 이 책은 늙은 개라는 헌 가족과 아기라는 새 가족과 살아가는 엄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지금은 별이 된 나의 친구, 첫 반려견이 무척이나 생각났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