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엄마 유기견 입양기 (#유행사 입양 후기)
견생역전 리비 만만세 시리즈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우리 부부에게 새 가족이 생겼다.
9월 초부터 강릉 유기견보호소에 있던 이 아이를 ‘유기동물행복찾는사람들(이하 유행사)’이라는 단체에서 서울로 데려와 단풍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셨다. 우리 부부는 유행사를 통해 단풍이를 데려오게 되었고, 단풍이는 우리의 개딸 권리비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반려견을 케어해본 경험이 없다. 난 어렸을 때 아주 작은 강아지조차 너무너무 무서워하는 쫄보였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 호스트 가족이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다. 나중에야 잘 적응하기는 했지만 그 집에서 첫 밤을 보내고 난 다음 날 아침, 일어나긴 했는데 강아지가 너무 무서워서 한 30분을 1층 거실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창피해서 호스트 가족을 부르지도 못하고 나 혼자 계단에 서서 ‘이제부터 1년을 얘랑 어떻게 살아야하나’ 정말 막막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흑역사의 소유자인 내가!!!! 언제부턴가 ‘결혼을 하면 당연히 언젠가는 강아지도 키워야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 구석에 갖고 살았다. 결혼 전에 남편한테도 언뜻 그런 말을 몇 번 했지만 남편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서 아마 기억도 못할 것 같다ㅎ
나도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그 생각은 금방 잊어버리고 살았다. 결혼 6개월이 넘어가니 그 즈음에야 드디어 새로운 식구를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초가을부터 여러 단체를 통한 유기견 입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노란 천막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태원을 지나다니며 봐왔다. 그런데 궁금해서 막상 가까이 다가가도 누구도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큰 소리로 홍보를 하는 이가 없었다. 여러 봉사자들이 울타리 안에 강아지들과 함께 앉아 그저 강아지들을 돌볼 뿐인듯 해보였다. 의아해하며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입양 절차를 거치면서 비로소 유행사가 사람의 편의가 아니라 동물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단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행사는 봉사자들로만 운영되는 단체이기 때문에 별도의 사무실이 없고, 주중에는 여러 임시 보호처에 나눠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다가 매주 토요일 노란천막에 입양 대상 강아지, 고양이들을 데리고 나온다. 입양 희망자는 천막을 직접 방문하여 아이들을 확인하고 봉사자들과 입양 상담을 받도록 되어있다. 유행사 인스타그램이나 다음카페를 통해 입양 대상 강아지, 고양이들의 자세한 사연과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유행사 인스타그램을 통해 단풍이의 구조 소식을 처음 접한 그 때부터 단풍이가 유독 눈에 들어왔고 고민고민 끝에 우리는 추석연휴가 지나자마자 입양 상담을 위해 이태원 노란 천막으로 달려갔다. 실제로 본 단풍이는 정말 조그맣고 너무나 얌전하고 말로 표현 못할만큼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ㅠㅠ
강아지 입양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후 한 달 정도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도 여러 편 보고, 갓형욱 님의 책도 읽어보고… 나름대로 여러가지 준비를 꽤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입양 상담 때 유행사에서 우리에게 주신 피드백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반려견을 키워본 경험도 없고, 결혼한 지 1년도 안된 맞벌이 신혼 부부에, 아기도 아직 없음. 사는 집도 그렇게 크지 않고, 양가 부모님들은 아직 우리의 강아지 입양 의사에 대해 잘 모르시는 상태.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우려가 많으셨을 법도 하다 (가정방문 하시겠단 말씀이 없으셨던 것이 다행일 정도!).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그 후에도 꼭 단풍이가 아니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오라는 운영진 분들의 말씀을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가 상담을 받은 날, 세 가족이나 단풍이 입양 상담을 받고 갔다고 했다.
속상했다. 너무 예쁜 단풍이를 직접 만난 뒤 막상 유행사로부터 거절(?) 비슷한 반응을 듣고 나니 너무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해해야 했다. 그렇게까지 신중을 당부하시는 건 그만큼 우리같은 사람들이 그동안 숱하게 입양 후 파양을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후에 유행사에서 파양되어 돌아온 아이들의 사연들을 다시 읽어보는데 정말 기가 막혔다. 며칠,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씩을 키우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을 파양하는 사람들이 정말 있었다(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단풍이를 안아본 이상, 단풍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너무나 확고해졌다. 이 때부터는 나보다도 남편이 더 안달이 났던 것 같다. 혹시라도 다른 가족에게 입양이 될까봐 주중에도 계속해서 운영진 분들에게 연락해보라고, 답은 왔냐고, 다시 한번 얘기해보라고 나를 부추겼다ㅎㅎㅎㅎㅎㅎ
나는 취업할 때 이후로는 통 써보지 않았던 장문의 자소서와 ‘입양 신청의 변’을 정말 공들여 써 보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반려동물 키우는 것에 대한 규정이 있는지도 확인하고, 양가 어른들께도 정식으로 입양 의사를 말씀드렸다. 이것도 다 운영진께 소상히 말씀드렸다 ㅎㅎㅎ 그리고 그 주 금요일 밤, 유행사로부터 내일 다시 한번 노란 천막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은 오래 전에 잡아놓은 시댁 어른들과의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전 주에 단풍이를 안고 계시던 봉사자 분께서 단풍이는 입양 희망자가 많을 것 같으니 다음 주에 또 오시려면 꼭 11시 오픈시간에 맞춰 오시라고 하신 것이 생각나서 조금 무리해서 점심 약속 전에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단풍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입양 서류를 작성하자마자 그 길로 바로 중성화 수술을 위해 유행사와 연계된 병원으로 데려갔고, 수술을 잘 마친 다음 날인 일요일에 단풍이는 우리집에 와서 리비가 되었다. 수술하고 집에 오기 전 하루 동안 우리는 리비를 위한 켄넬, 밥그릇, 배변패드 등등 기본적인 물품들을 준비했다.
우리집에 오고 처음 맞는 월요일에는 남편이 오전 반차를 내고 늦게 출근해서 리비가 혼자 있는 시간을 줄여주었다. 그 주에는 내내 둘이 번갈아가며 점심시간에 집에 들러서 리비와 시간을 보냈다. 홈캠도 바로 설치해서 틈나는대로 리비를 살폈다. 애초에 둘 다 회사가 집에서 가깝고, 나는 평일에도 쉬는 날이 종종 있는 편이기 때문에 맞벌이지만 강아지를 데려올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분리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세나개에서 본대로 5-10-7 연습도 매일매일 열심히 해주었고, 요즘은 코담요에 간식을 숨겨주고 나가니 출근하는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간식을 찾기 바쁘다 ㅎㅎㅎ한동안은 간식을 다 찾고나면 여전히 조금 끙끙했는데, 이제는 그 정도의 낑낑댐도 거의 없이 자기 자리로 가서 코코 잘 잔다.
리비는 우리의 서투른 손길도 너무나 잘 받아들여주고 그 흔한 입질이나 저지레 한 번 없이 순둥순둥 천사처럼 잘 자라주고 있다. 접종도 무사히 다 마쳤고, 아직까지 아픈 데 없이 아주아주 건강하다! 짖는 목소리는 어쩌다 산책 중에 오토바이가 너무 가까이 지나가거나, 길냥이를 만났을 때, 택배나 음식 배달 아저씨가 집에 오셨을 때 정도만 들을 수 있다. 사람이라면 거의 다 좋아서 난리난리, 강아지 친구들에게도 무례하지 않게 얌전히 냄새를 맡으며 다가간다.
아직 반려인으로서 부족한 것이 너무너무 많지만 그래도 혹시나 반려동물 입양이나 분양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끝으로 몇 가지만 적어보려 한다.
가장 먼저는 현실적인 상황을 충분히 검토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입양을 위한 마음의 준비 뿐 아니라 현실적인 여건이 갖추어진게 맞는지도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앞으로 수 년간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지,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이 입양에 동의하는지(사람 아기 육아가 그렇듯, 직장인 개엄빠에게는 가족의 도움이 너무나 소중하다ㅠㅠ), 동물도 사람도 함께 무리없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있거나 앞으로 갖추어 갈 수 있는지. 완벽하게 모든 조건이 꼭 갖춰져있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진지하게 여러가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꼭꼭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반려견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부족한 초보라는 점, 우리집의 쁘띠한 사이즈ㅎㅎ, 맞벌이라는 상황 등등 현실적 제한사항들을 고려해서 유행사에서 올려주신 여러 강아지들에 대한 설명들을 유심히 살폈다.
평소에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던 견종은 베들링턴 테리어, 폭스 테리어 같은 중형견들이었고 기왕 도움이 필요한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이라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데려오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던 것 같다 ㅎㅎ 나름 열심히 입양을 준비했다 생각했고, 리비가 저엉말 손이 많이 안가는 편인데도 막상 함께 살기 시작하니 지금까지도 엉성한 것 투성이다. 유기견을 데려오고 싶다는 좋은 마음을 먹는 것이 다가 아닌 것 같다.
또 한 편으로는 유기견은 상처가 많고 건강에 문제가 많아 함께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유기견 중에는 여러번 파양이 되었거나, 과거에 학대를 당해서 정말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반면에 리비처럼 정말 도무지 왜 길에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하고 사회화도 비교적 잘 되어있고 심지어 꽤 사랑받으며 자란 것 같은 아이들도 아주아주 많다. 그만큼 여러가지 사연으로 버려지는 강아지들이 저엉말 많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다. 상처가 있는 강아지들도 (대부분) 반려인의 꾸준한 노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샵에서 분양을 받는다고 해서 예절 교육이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훈련이 필요없는 것도 아니다. 교감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다 똑같다.
강아지를 데려오는 가장 쉬운 방법은 펫샵을 찾는 것이다. 유행사에서 처음 상담 후 부정적인 의견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도 분명 유혹이 있었다. 남들은 다 쉽게 잘만 키우는 것 같은 강아지 한 마리 데려오는게 이렇게나 까다로울 일인가? 펫샵에 가면 건강상태도 어느 정도 보장되는 작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을 얼마든지 골라서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펫샵에 있는 아이들도 나름 불쌍한 아이들이니까 그냥 샵에서 데려오면 안되나? 유기견 아이들은 상처가 있으니까 우리같은 초보에겐 너무 무리아닐까?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더 잘 준비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최고 사랑스러운 개딸랑구가 생겼다!우리가 택한 길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조금 더 커지면 분명 여러가지 어려움도 생기겠지!그래도 최선을 다해 너를 행복하게 해줄게 딸!!!!!!
유기견을 돕기 위해 힘쓰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
와 단숨에 읽어나갔네요 저기 리비 발 위에 간식 놓여져있는건가요 ㅋㅋㅋㅋ